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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식품 라면의 비하인드 스토리. 🍜

쭈우~ 쭈쭈 2023. 11. 17. 23:13

최애식품 라면의
비하인드 히스토리.

우리 일상의 최애
기호식품 이자
언제부턴가 우리의 식탁에
없어서는 안되는
먹방계의  최고봉 이요
세계1위의 소비율을 자랑하는
간식 & 주식 먹거리 계의
단연 선두주자 라면의
탄생 및 도입 과정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오늘
간략히 정리해 올려 봅니다.

라면은 1963년 9월 15일
태어 났습니다.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아
한국 사람들 모두가 힘들게
살아가던 1961년 어느날
삼양식품(주) 전중윤 사장은
남대문시장을 지나다
배고픈 사람들이 한 그릇에
5원하는 꿀꿀이 죽을 사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선 모습을 봅니다.

전 사장은 '저 사람들에게 싸고
배부른 음식을 먹게 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 끝에
일본에서 라면을 제조하는
기술을 들여올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외화가 없고
국교가 단절됐던 때라
라면을 제조하는 시설을
들여오기는 하늘에 별따기 보다
더 어려웠던 때 였습니다.

정부가 가진 달러를
민간이 원화로 사던 시절이라
한 라인에 6만 달러인
라면 제조 시설을 수입하기엔
전 사장도 돈이 부족했고
가난한 정부도 옹색하긴
마찬가지 였습니다.

궁하면 통한다고 전 사장은
당시 중앙정보부장 이던
김종필(JP)씨를 찾아갑니다.

“국민들 배 곯리지 말자”는
전 사장의 호소에 당시
나는 새도 떨어트릴 정도의
세도를 가진 JP는 마침
농림부가 가지고 있던
10만 달러 중 5만 달러를
전 사장이 사도록 도와줍니다.
            
이를 계기로 두 사람의 우정은
이후 오랜 세월 이어집니다.

신용장을 열고 전 사장이
일본으로 갔지만 일본의 반응은
여전히 냉담 했답니다.

일본도 어렵던 시절
라면 제조 시설을 국교도 없는
한국에 선뜻 팔려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던 것이죠.

여러 곳을 수소문하다
전 사장은 묘조(明星) 식품의
오쿠이(奧井) 사장을 만나
한국의 식량 사정을 이야기하며
도와 달라고 청합니다.

다음 날 대답을 들으러
다시 찾은 전사장에게
오쿠이 사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 이야기를 듣고 많이 생각했다.
나는 한국에 가본 일이 없고
아직 국교 정상화도 안 됐지만
한국 전쟁이 일본 경제를
재건해 준 셈이다.

당신들은 불행했지만 우리는
한국전쟁 덕분에 살아가고 있다.
내가 민간 베이스로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고 시설도
싼 가격으로 제공하겠다.

오쿠이 사장은 한 라인에
6만 달러라던 라면 제조 시설을
두 라인에 2만5.000 달러로
넘 감사하게 즉석에서 발주를
바로 해주었다고 합니다.

면과 수프의 배합에 관한
일화도 있습니다.

전 사장은 일본 현지에서
라면 제작의 전 공정을 배우지만
일본인 기술자들은 끝내
면과 수프의 배합 비율은
가르쳐 주지 않더 랍니다.

전 사장이 끝내 비율을
못 배우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오쿠이 사장은 비서실장을 시켜
공항에서 봉투 하나를
전 사장에게 전해 줍니다.

비행기에서 뜯어 보라는
그 봉투 안에는 기술자들이
펄펄 뛰며 비밀로 했던
면과 수프의 배합 비율이
적혀 있었습니다.

가난하고 굶주렸던 국민들의
배를 채워줬던 라면은 이렇게
눈물겨운 사연을 안고
1963년 9월 15일
삼양 '치킨라면'이란
이름으로 태어 났습니다.

당시 가격이 한그릇에 10원
식당에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가 30원이고
커피 한 잔이 35원이던
시절이니 저렴한 가격은
분명 했던건 맞습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우리들의
최애 기호식품 이된
라면의  눈물나는 절치부심
히스토리 였네요. 😋

저도 라면하면 누구한테 라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좋아하지만
이런 라면에 관한 히스토리가
있음에 더욱 감사한 맘으로
맛나게 먹어야 겠어요.

아,, 오늘밤도
야식으로 얼큰한 국물에
라면이 땡기는 밤이네요.😋

군 나잇요^^